2025년 10월 한국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복음연맹(WEA) 총회를 앞두고, 조직의 리더십과 운영 전반을 둘러싼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WEA의 전(前) 회원단체였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는 영어와 한국어로 총 26쪽 분량의 내부고발 문건 세 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서들은 WEA 내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위 지도자들과 이사회 구성원들의 신학적·도덕적 문제, 거버넌스(조직 운영 구조), 재정, 책임성 등에 대해 상세히 비판하고 있다.
내부고발자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문건들에는 WEA 내부 운영과 재정, 조직 체계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드러난다.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독립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대체로 온라인 정보를 근거로 한 내용이 많다.
이 문건과 관련해 WEA와 거론된 인사들에게 의견을 요청했지만, 기사 작성 시점까지 공식 답변은 없었다. (추후 답변이 도착하면 본 기사에 추가할 예정이다.)
문건에서 제기된 핵심 쟁점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 에큐메니컬 및 타종교 연대
- 신학적 문제
- 재정 관련 이슈
- 거버넌스(조직 운영 구조)
- 도덕적 문제
1. 에큐메니컬(Ecumenical) 및 타종교 연대
문건이 지적하는 첫 번째 우려는 WEA가 로마 가톨릭과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컬 기구와 협력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고발자는 이를 두고 “복음주의 핵심 신념이 훼손될 위험이 있으며, WEA의 신학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복음주의권에서는 종교 자유, 인도주의적 지원, 인신매매 근절 등 공동의 도덕·사회적 과제에 대해서는 가톨릭이나 정교회와 협력하는 것이 폭넓게 지지된다. 그러나 함께 예배하거나 공동 전도활동을 펼치는 데 대해서는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의 마닐라 선언문(Manila Manifesto) 역시 “공동의 복음전도를 위해서는 성경적 복음에 대한 공통된 헌신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WEA는 제네바에 있는 WCC 본부 내 에큐메니컬센터(Ecumenical Centre)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Global Christian Forum, Religions for Peace 등 다자간 글로벌 포럼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 자체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으나, 내부고발자는 최근 들어 비(非)복음주의 진영과 함께 ‘공동 기도’나 ‘공동 전도’가 잦아지는 추세에 우려를 표시한다.
예를 들어,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한 보고서에서 “바티칸, WEA, 세계오순절협의회(PWF)와 대화를 시작했으며, 지역 사회에서 공동 선교 활동을 더욱 심화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33년(예수 부활 2000주년)을 기념한 전도·부흥 운동이 에큐메니컬·가톨릭·복음주의 진영이 함께 추진하는 형태로 마련되고 있다는 지적도 담겨 있다. 실제로2023년 WEA의 ‘Future of the Gospel Forum’에는 한 에큐메니컬 단체의 창시자인 올리비에 플뢰리(Olivier Fleury)가 연사로 초청되었다.
실제로 2017년 이탈리아, 스페인, 몰타 복음주의연맹도 WEA가 기존 입장을 벗어나 에큐메니컬 색채를 띠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 바 있으며, 당시 WEA는 공식 반박문을 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대응 없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내부고발자는 이어, 지난해 WEA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정부가 승인한 삼자애국운동(TSPM) 및 중국기독교협회(CCC) 관계자들만 만난 점도 문제 삼고 있다. TSPM/CCC는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소속된 조직으로, 중국 정부의 입장과 매우 밀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건은 WEA가 이번 방문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며 정부의 ‘선전’을 그대로 옮겼고, 중국 내 기독교 박해가 심각해지는 상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지하교회(가정교회) 등과는 전혀 교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비판한다. 이는 가톨릭 교황청이 중국 정부와의 협정을 통해 지하교회를 외면한다는 비판과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무슬림 지도자들과의 교류도 언급되는데, 기독교 박해 현실을 명시하지 않은 채 ‘협력’이나 ‘파트너십’만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들의 박해 상황을 축소·은폐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예로, 카타르(Qatar)에 WEA 사무소를 개설한다는 계획이 거론되는데, 카타르는 오픈도어(Open Doors)가 선정한 기독교 박해 상위국(World Watch List)에 포함된 국가다.
2. 신학적 문제
두 번째로 제기된 문제는 WEA 핵심 지도자들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의심이다. 특히 국제이사회(International Council) 의장인 굿윌 샤나(Rev. Dr. Goodwill Shana)가 신사도운동(NAR) 및 번영신학을 지지한다는 의혹, 그리고 부의장인 프랑크 힌켈만(Rev. Dr. Frank Hinkelmann)이 동성 커플을 인정하는 자유주의 교단에서 안수를 받고 사역하고 있다는 점이 주된 논란이다.
굿윌 샤나 의장은 한국 교계에서도 신사도운동 관련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인사들을 추적한다는 한 웹사이트에 샤나가 명단에 올라 있고, 그와 그의 아내가 ‘사도(Apostle)’ 칭호를 사용한다는 점도 논란이 되었다. 다만 신사도운동(NAR)이 자체적으로 분산된 성격을 띠고 있어 검증은 쉽지 않으며, 샤나 본인도 이 문제에 대해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편 문건은 샤나 부부가 “계시, 능력, 재정적 축복” 등을 강조하는 설교를 펼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모린 샤나(Maureen Shana)는 설교에서 “부흥 시기에는 부의 이동이 따른다. 복음은 무료지만 전파에는 돈이 필요하므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재정을 부어 주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해진다.
복음주의 신학계에서는 번영신학을 대체로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비판한다. 로잔운동 신학실무그룹(당시 의장: 크리스 라이트)은 2010년에 발표한 성명에서 번영신학을 “성경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거짓 교리”라고 규정했고, 이를 전하는 설교자들의 태도를 “부도덕하고 비그리스도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부고발자는 또한 샤나가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앤티오크 바이블 칼리지(Antioch Bible College)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조사 결과 해당 기관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샤나를 포함한 국제이사회 구성원 중 누구도 공식적으로 LGBT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프랑크 힌켈만 부의장의 경우, 복음주의 교단이 아니라 자유주의 성향의 개신교단인 ‘오스트리아 복음주의 교회(Evangelische Kirche A.u.H.B. in Österreich)’에서 안수를 받았으며, 현재도 그 교단 내에서 목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판의 초점이다.
힌켈만은 2015년 오스트리아 멜크(Melk)에 위치한 ‘복음주의 구세교회(Evangelischen Erlöserkirche Melk)’에서 안수를 받았으며, 해당 교단은 공식적으로 동성커플의 결합과 축복을 인정한다. 이는 WEA가 공식 천명한 ‘성(性) 정체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상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샤나와 힌켈만 모두 이러한 의혹에 대해 현재까지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3. 재정적 어려움과 이사회의 미흡한 대응
내부고발자는 또한 WEA가 최근 재정적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재정적으로 풍족한 국제이사회 멤버들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23년 12월, WEA는 모금 이메일을 통해 “올해 많은 사역을 했으나, 일반 기금(General Fund) 수입이 크게 감소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이 이메일에는 “각종 비용 절감을 위해 급여를 30% 삭감하고, 일부 직원을 감축했으며, 자원봉사 활용을 늘리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비영리단체 거버넌스 관행에 따르면, 조직이 재정 위기에 놓였을 때 이사회가 적극 개입해 재정 지원이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기독교 재단이나 후원자들은 대체로 이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참여하는지를 조직의 안정성 척도로 삼는다. 그러나 내부고발자는 WEA 국제이사회에 상당한 재력을 갖춘 인사가 있음에도, 급여 삭감과 인력 감축을 막기 위한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WEA는 2023년 사역 보고에서 전 세계 후원금, 회원비, 현물 지원 등을 합쳐 연간 약 500만 달러(USD) 규모의 예산을 운영한다고 밝히며, “일부 개인, 재단, 가문의 관대한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재정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4. 책임 구조(거버넌스)
재정 문제 외에도, 내부고발자는 이사회 의장이 CEO 역할까지 겸임하는 현재 임시체제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책임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2024년 3월 말, 당시 WEA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이던 토마스 쉬어마허(Dr. Thomas Schirrmacher)가 사임하자, 국제이사회 의장인 굿윌 샤나가 “Executive Chair”라는 직함으로 CEO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이는 사실상 의장이 스스로를 감독해야 하는 모순을 초래한다. 통상 비영리단체에서는 의장이 임시로 CEO 직무를 대행하더라도, 의장직은 별도의 인물에게 넘겨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한다.
당초 WEA는 “6개월 안에 새 사무총장을 선임하겠다”고 공식 발표(현재 해당 안내문은 웹사이트에서 삭제된 상태)했지만, 이후 공지에서는 샤나의 겸직을 2025년 10월 31일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6년 주기로 열리는 총회(General Assembly) 시점과 맞물린다.
그 결과, 새 사무총장이 조기에 선출되더라도 총회를 준비하고 주도할 시간은 사실상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WEA 사무차장으로서 사역 부문을 담당하는 새뮤얼 치앙(Samuel Chiang)이 총회 준비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내부고발자는 치앙이 지역이나 국가 단위 복음주의연맹 경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임시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발생하는 거버넌스 문제는, WEA가 Evangelical Council for Financial Accountability(ECFA)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주목된다. ECFA는 이사회와 경영진(CEO)의 역할을 명확히 분리할 것을 권고하며, 의장이 임시 CEO를 겸임하는 경우도 원칙적으로 60~90일을 넘지 않는 짧은 기간으로 제한하고 철저하게 모니터링하도록 규정한다.
5. 도덕적 문제
마지막으로, 내부고발 문건에는 WEA 고위 임원과 국제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일부가 별거·이혼·재혼 등 가정 문제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에 대한 분명한 윤리·도덕적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일부 지도자들이 별거 중이거나 이혼 절차를 밟고 있거나, 혹은 이혼한 배우자와 재혼했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단체들 중 다수는 디모데전서 3장을 근거로 “가정 관리가 잘되지 않는다면 교회 공동체를 돌볼 수 없다”며, 배우자의 명백한 불륜 등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혼 경력이 있는 인사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주목할 점은 차기 WEA 사무총장을 선발하는 공고에도 ‘만족스러운 가정 상황(satisfactory family situation)’이 요건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 판단 기준이나 절차는 밝히지 않았다.
결론 및 전망
내부고발자가 공개한 문건들은 WEA 지도부가 직면한 신학적·재정적·운영적·도덕적 문제를 폭넓게 조명하고 있다. 오는2025년 10월 서울 총회를 앞둔 시점에 이러한 의혹들은 전 세계 복음주의 진영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WEA는 문건에서 제기된 구체적 사안들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만일 후속 조치나 해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